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간직한 파다무스 대륙.
과학과 문화, 그리고 마법으로 그 찬란한 빛을 뽐내던 문명은 5천 년 전 갑작스레 막을 내렸다.
그 원인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에 대한 징벌이다, 끝 모를 탐욕으로 인한 인간의 자멸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다, 말들은 많았지만 그 어느것 하나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상처뿐인 과거를 뒤로하고 다시한번 빛나는 문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3개의 제국이 있었다.
기적과 신성의 나라 빛의 신 루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하는 룸.
학문과 예술, 그리고 전 세계 유일의 8서클의 대마법사를 배출한 피롯.
기사도를 숭상하고 수많은 소드 마스터를 배출한 루시엘라.
각 나라마다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며 각자 독특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인간들이 각자의 문화를 계승하듯, 어둠의 일족들도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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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의 나라 루시엘라 북부의 슈탄 마운틴.
그 웅장한 크기로 구름마저 쉬어간다는 그곳 중턱에, 누구도 예상 못한 흑색의 고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은 지금 열띤 토론이 한창 중이었다.
"장오르 하크 우리들의 군주시여, 지금 우리들은 도태되고 있습니다. 우매한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다른 족종을 파멸로 이끌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멸종된 종족이 도대체 몇 이나 되는줄 아십니까? 누군가는 나서서 길을 바로잡아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일족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흑발의 단단한 느낌의 육체를 가진 '쿠미드 료'가 약간은 흥분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주변의 많은 밤의 일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쿠미드 료의 말에 약간이나마 동조하는 것으로 보였다.
"인간들이 우매한 것을 안다. 의미 없는 살생을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다.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신의 율법을 대리한다는 드래곤조차 그들을 바로 잡지 않는데 우리에게 무슨 명분이 있겠나?"
"어둠의 나무, 작은 점 요정, 큰바위 족, 검은 눈 하피 그 외 수많은 종족들의 공통점이 무언지 알고 있습니까?"
"... ...알고 있다."
"에바 라이, 쥬리 세반스, 시리아 소크, 나이하드 빌리, 사이안트 록스 그리고 쿠미드 케인! 이 이름들이 무얼 의미하시는지 아십니까?"
"...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 멸종된 종의 이름과 성인도 되기 전에 붉은 달로 돌아가야 했던 우리들의 아이들입니다. 그런데도 명분이 없다고요?"
"그리고 작은 제 힘 하나 믿고 인간 세계를 어지럽힌 자들이기도 하지."
"하크!! 인간은 위험합니다!"
"내 마음은 잘 안다. 케인을 포함한 다른 여러 아이들의 일도 안타깝지만 애초에 그들을 바르게 훈육하는 것 또한 우리들의 소임인것을 잊었느냐?"
료는 이를 갈았지만 더 이상 경거망동 하지는 못 했다.
"루이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백발, 백안, 백미 어둠의 일족 중 유일한 백색 눈동자를 가진 무녀 라오스 루이가 말했다.
"아무런 계시를 받은 것이 없습니다."
"계시 말고 자네 생각을 묻는 것이네 루이."
"... ..."
라오스 루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먼저 말해도 되겠습니까?"
적발의 짙은 눈썹 폭발하는 근육질 몸매를 가진자 답게 성격 또한 급한 '비오르 센야' 오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말하라."
"지금 이 일로 대립해봤자 이득도 없고 또한 실행 여력도 없습니다. 하여... 다음 세대에게 맡기는 게 어떨까 합니다?"
"다음 세대?"
"70년 후, 피의 율법에 따라 우리들은 새로운 군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군주의 의중대로 행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희가 이렇게 '인내' 하는 것처럼요."
차분하게 안건을 다음으로 미루면서 자신 또한 료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센야였다.
하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지금이야 이들을 이렇게 자중시킬수 있다지만 다음 세대에게 군주 자리를 넘기고 한발 물러나게 된다면 과연 그때의 군주는 무슨 결단을 내리게 될것인가? 그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무엇이 올바른 것일까.
생각은 깊었으나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 하크가 말했다.
"좋다. 때가 되면 당연히 그래야겠지."
"현명하신 결정이옵니다. 나의 군주시여."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인 센야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감돌았다.
좌중을 둘러본 하크는 엄숙히 선포하였다.
"붉은 달의 법칙에 따라 각 가문에서 단 하나의 대표자를 선출하라 그중 가장 큰 힘을 가진 자에게 피의 율법에 따라 모든 권한을 넘기겠다."
척, 척-
수천의 어둠의 일족들과 일족의 수장들은 손을 가슴에 올린 체 고개를 숙였다.
대답도 필요 없었다. 수장들이 인정한 군주의 선포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될 뿐이다.
모두들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쿠미드 료'는 급하게 '비오르 센야'를 찾았다.
"무슨 생각이 있는거요? 다음 세대에는 확실하게 '비오르 가'에서 군주가 나올거라 생각하는 거요?"
"료. 꼭 '비오르가' 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들의 가문에서 나온다면 모든 게 잘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우리 어둠의 일족들이 인간들에게 바른길을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쿠미드 료는 매우 감명받은 얼굴을 하였다.
"역시 그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려? 고맙소. 고마워. 근데 라오스가에서는 무슨 언질이 없었소?"
실상 다른 생각을 가진 그들이었지만 료는 그것까지 알진 못 했다.
"그 무녀 집안이야 이런 일에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는것 봤습니까? 그놈에 계시 타령을 하느라 자신들은 아무런 생각조차 못하게 된 게지요. 마지막 계시를 받은지 2천 년이 넘었어요. 이름만 무녀 면 뭐 합니까. 내 가문에서 군주가 나온다면 꼭 라오스가의 권력을 축소시킬 것입니다."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인 라오스 가문을 비오르 센야는 경멸하였다.
"우리들이 가진 패는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군주, 하크가 가진 패는 고작 한 개. 그것도 아직 어려서 그때까지 무사히 자랄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피의 율법이 행해질 때까지 말입니다. '사고'가 많은 세상 아니겠습니까?"
말을 하는 센야의 표정은 섬뜩하리만치 차가웠다.
훗 날 파다무스 대륙의 인구를 반으로 줄이게 된 전쟁의 시작은 아마 여기서부터 일지도 모르겠다.
(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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