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올해 봤던(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지금까지는 가장 인상깊게 봤네요. 여러가지로 생각에 잠겨봤어요
영화 제목이 '산다'네요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박정범이 영화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가졌을지 예상해볼 만하고요.
극 중 된장 공장장 역의 배우가 박정범 감독의 실제 친아버지이고, 촬영지인 된장 공장도 아버지가 실제 운영하는 공장이라더군요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평생 몸을 쓰는 노동자로 살아오셨다는 아버지의 영향이 느껴지는 이번 작품이었습니다.
부모를 잃고 그 때문에 정신질환을 얻은 누나 승연과 그녀의 딸을 보살펴야 하는 주인공 정철. 그리고 산사태로 무너진 집.
영화가 앞에서 얘기하려고 했던 건 우리 모두 누군가에겐 갑이고, 또 누군가에겐 을이라는 먹이사슬인듯해요.
어느 인물 하나 콕 집어서 악하거나 선하다고 단정 짓기 애매한 부분을 다들 갖고 있더라고요.
종교적인 모습을 보인, 그나마 '사랑'의 상징을 한 캐릭터들도 결국엔 약속이나 한 듯 하나 둘씩 치부를 드러냅니다.
동기는 선했으나 더 큰 화를 불러온 일련의 사건들부터 생계(돈)의 압박에 추잡스러워지는 인물의 변화들이요.
특히, 목사님의 설교와 신도들의 찬송가를 뒤로한 채 몰래 헌금을 훔쳐 교회를 빠져나가는 어린 딸의 모습에서 전율을 느꼈어요.
또 약탈자로만 보이던 '갑'도 그들의 속사정을 내비치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하소연하네요.
잘려나가는 나무들과 된장 공장의 말단 노동자들은 정철에게, 정철은 공장장에게, 공장장은 부잣집 사돈에게 얽매여 있어요.
(앵무새는 그의 주인에게). 결국 공장장은 노동자들에게 얽매이기도 하지만요.
흥미로운 건 가장 하찮게 느껴지는 메주의 실곰팡이가 클로즈업되며 최상위 포식자인 공장장의 생계를 위협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166분의 긴 러닝타임동안 영화는 줄기차게 '을'들의 처량함도 보여주네요. 롱테이크를 통한 들여다보기로 비록 심하게 불편하진 않은
강도지만 그것들이 계속해서 반복 되다 보니 이제는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 정도로 집요하게 되풀이됩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듯한 척박한 미장센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네요.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곱씹어보면 안타까운 결말이 예상될 법도 하지만, 다행히도 한 가닥 희망을 안겨줍니다.
생계의 압박에 계속 고통받던 주인공은 결정적으로 '아프지 말라는' 명훈의 충고에 마음을 추스르네요. 명훈은 작품 전반에 걸쳐
순교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듯해요. 그 덕분에 쓰라린 삶을 조금씩 달관하고 산사태에 무너진 집도 그를 닮아 조금씩 복구가 돼가고요.
치근대는 여조카에게 들어가 피아노나 치라고 했더니 잠시 후 들려오는 싸구려 아코디언 소리에 또 한 번 제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보다 못한 주인공은 조카를 위해 집 나간 그녀의 엄마를 반겨줄 가로등을 함께 매달고, 마지막으로 빚 독촉을 위해 떼간 동료 집의
대문을 마치 죄의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되돌아가 달아주면서 들려오는 전동 드릴의 소리와 함께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이제껏 대문이 없어 추위에 벌벌 떨었을 가여운 빚쟁이의 아들의 방 창가에 날이 밝아오며 스며드는 빛은 곧 주인공의 참회에 대한
응답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독한 먹이사슬 속에서 피어오르는 헌신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중간중간 들려오는 7080 가요들이 이렇게 생생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게 추억을 억지로 끌어오는 모티브로 쓰이는데..
더불어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의 가사들이 영화에 슬며시 오버랩됐네요.
끝으로, 가장 연약하고 핵심적인 캐릭터인 수연(이승연)의 연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철을 비롯한 영화 '똥파리'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대는 초반부터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허락하는, 심지어 헌신의 상징으로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연기들은
'을'들의 고통을 밟히는 개구리처럼 대변하여 아파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을 듯해요.
늘 그랬듯 극 중 수연은 그렇게 방황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겠지만요.
(사회)
스웨덴 공직자 청렴도가 높은 이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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