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를 9번 만날 수 있었다.
장률은 1962년생이다.
9. 필름 時代 사랑 (2015) : 사랑이 영화를 꿈꾼 것인가, 영화가 사랑을 꿈꾼 것인가
본편에 대해서는 이미 지인이 좋은 평문
을
남겨주신 바 있으나,
개인적으로 문득 하나의 질문이 풀리지 않고 꼬리를 물어 부족한 감상을 더해본다.
더불어, 올해 평년 이하였던 한국영화 개봉작의 성취 중에서도 본편은 특히 총관객수 1,605명에,
비평적으로도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가혹한 대접을 받았음을 상
기하자면
장률의 전작을 모두 일독한 이로서 <풍경>, <경주> 이후에 찾아온 본편의 심경에 응답하는 것이 예일 듯 싶다.
먼저 <두만강>을 마주했던 부산영화제의 기억을 되살려야겠다.
데뷔작 <당시 唐詩>와 출세작 <망종> 이후 장률은 거의 매년 장편을 발표하였다가, 갑자기 <두만강>에서 멈췄다.
연이은 5편의 장편은 마치 지리적으로도 두만강이라는 중국과 조선의 접경에 이르러 멈춘 듯 했다.
하지만, 영화제 당시 관객으로서 나와 song님의 일성은 그가 이제 서구 예술영화의 양식미에 경도되어
일종의 나르시시즘과 매너리즘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편한 시선으로 발설되었다.
그것은 마치 장소를 호명하며 내달리던 그가 두만강 근처에 이르러 숨을 헐떡이는 모습으로 상상되었다.
그가 거주했던 그 곳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표면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이 땅으로 이주하여
처음 내놓은 <디지털3인3색>의 중편을 확장시킨 <풍경>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무력한 카메라의 위치를 점했다면
<경주>는 홍상수의 외피 안에 유령의 속살을 빚어 오래전 한 나라의 수도였던 도시의 이면으로 서울을 되물었다.
그리고 이제 본편에 도착했을 때 두 개의 경 景 - 慶을 경유한 후에 우리에게 도착한 것은 또다른 경 鏡이다.
이 거울 鏡을 한강으로 보든 혹은 4장 결말부에 걸려있는 거울로 지적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세번째로 도착한 경 鏡은 전작 두 편과는 달리 그 자신의 자취를 제목에 남겨두지 않고 은폐되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경 鏡은 본편 안에서 제목으로 혹은 소제로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데, 그것은 필름이다.
거울로서의 필름, 정직한 재현으로서의 거울을 넘어서서 돌이킬 수 없는 시공의 지점에 대한 감정으로서의 경 鏡.
하지만, 이 경 鏡 앞에 서서 관객은 <풍경>의 동력 없이 움직이는 물체들과 <경주>에서 동일 공간에서 변형된 상황처럼
영화의 거부할 수 없는 존재론으로서의 마력에 다시 동하기보다 무력함을 넘어 무책임의 그리움에 다소 지치게된다.
이 맥락에서 본편의 유일한 질문은 하나로 압축된다. 도대체 필름은 무엇인가?
본편이 필름을 내세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를 혹은 연애편지를 양식화할 때 남겨진 질문은 위와 같다.
갑자기 툭 필름이라는 화두가 디지털에 비견될 필요가 없었다면, 본편은 필름의 상징어로 무언가 남겨놓았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본편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고, 1장의 '사랑'은 2장의 '필름', 3장의 '그들'로 이원적으로 해설 장식되고
끝끝내 4장의 '또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론적 검의 끝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지 화해의 서사로 되돌리고 있다.
1장의 '사랑'이 '필름'과 '그들'을 거쳐 도달한 곳 4장의 '또 사랑'이 자조, 사과, 복원 등의 봉합인 것은 의외다.
적어도 장률의 세계 안에서 이같은 회복의 서사가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뼈대로 하여 구축된 기억은 흔치 않거니와
감히 '죄송합니다'라거나 되돌림의 행위, 드넓은 공간으로의 긍부정이 제거된 초대가 덧붙여진 변형은 당혹스럽다.
도대체 무엇이 필름이라는 매체에 대한 갑작스런 의견 표명이라는 거죽을 쓰고 실질적으로는 각성된 회귀라는 형식의
제스처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되었어야하는 것일가에서 트램퍼님의 평문과 나의 시점은 다소간의 간극이 벌어진다.
다시 <두만강>의 지류 너머로 역류해야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적 죽음은 어디로 갔는가? <망종>에서 최순희의 아들 창호의 죽음에서 <두만강>의 유사 죽음까지의 행렬은
이 땅에서의 첫 장편 <풍경>에 와서는 현재적이지 않고, <경주>에서는 장례식 이후에 장소 자체를 유령화한다.
그렇다면 본편에서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두 개의 죽음은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한 명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안성기가 맡은 우울증 환자 할아버지는 청소부 여인(문소리 역)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촬영되고,
김지훈의 2007년작 <화려한 휴가>에서 저항군 안성기는 등 뒤에서 진압군에게 총을 맞고 쓰러진다.
하나의 촬영이라는 사실 공표, 그리고 또 하나의 자료 필름으로서의 그에 대한 소환.
그렇다면 안성기는 왜 그 곳에 죽음이라는 이미지의 유일한 담지자로 불러들어야하는가?
여기에는 기존의 장률 세계와 거리가 있는 정치사회적 시선을 이끌어내고 싶은 몹쓸 과대망상이 발휘된다.
안성기와 박해일/문소리/한예리의 차이는 80년대 혹은 90년대라는 시대 안에서 찾아질 수 있으며,
더불어, 3장 '그들'에서 호출된 세 편의 영화가 80년대의 그것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안성기의 죽음을 재호출하면 그는 어쩌면 당대라는 우울증 앞에서 연주를 하고 사과를 건네며
계약직 노동자를 희롱하면서 추적한 다음 오히려 그에게 칼을 건네며 스스로 죽음을 받으며 '컷'을 받는 존재다.
하지만, 그것은 촬영 중인 영화이며 이에 박해일은 감독에게 '사랑을 믿느냐'고 묻고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그의 말에 박수를 치는 이는 오직 문소리 한 명 뿐이다. 그들은 우연하게도 1999년과 2002년에 영화 안으로 들어온 배우들이다.
표면적으로 본편은 조명부 퍼스트(아직 빛을 완전히 다루지 못하는 남자, 즉 영화가 되지 못한 지점의 의인화) 박해일이
감독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필름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으며 두어차례 거리의 거울을 보고 결국 안성기의 기타 연주를 재현하는 영화다.
정리하자면, 1장 '사랑'에서의 안성기가 4장 '또 사랑'의 박해일로 변형되는
서사 사이에 2장 '필름'의 질감으로서의 필름은
서사와 배우가 완전히 배제된 공간 안에서 이미지만으로 관객은 무엇을 보고 상상하는가를 묻고
3장
'그들'의 자료로서의
필름은
오직 박해일과 문소리의 출연작의 음성 대사를 삭제하고 무성 자막으로 변형시킴으로서 서사를 일그러뜨린다.
물론, 2장 '필름'에서 중요한 것이 외피상 필름의 질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관객의 상상력의 확장이라는 욕망이라면
마찬가지로 3장 '그들'의 거죽은 세 편의 80년대적인 (유사) 죽음 이후에 태동하는 한예리의 <귀향>적 출구일테지만,
이를 풀어말하자면 그 곳에는 80년대의 말없는 죽음에 2000년(<박하사탕>은 2000년 1월 1일에 개봉했다)대의 자막이
덧붙여져서 그것에 대해 애도와 기억의 여부를 묻고 2000년의 첫 10년의 말미에 그나마 출산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격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2장 '필름'의 유일한 대사를 여기에 대입시킬 수 있는데, 그것은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온 소년의 말이다.
심부름값을 달라는 소년의 행위는 다른 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떨어진 것으로 90년대 비디오 시장을 의미하는데,
줄에 묶여진 비디오테이프의 영화는
국내 영화 한 편을 제외한다면 모두 1993년에서 1996년 사이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필름으로 만들어졌을 그 영화들의 비디오테이프라는 2차 유통매체는 이제 더 이상 용돈을 받을 수 없는 폐품들이지만,
적어도 비디오자켓의 옆면을 고의적으로 관객 앞에 전시함으로서 그 시절 관객이 열광했던 영화들을 되살려낸다.
만일 필름에 대한 사랑이 전술한 안성기를 필두로 한 80년대의 정치 사회적인 변혁 에너지와 90년대 문화 개봉기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이라는 문자로 이해될 수 있다면 본편은 과연 그에 대해서 지금 여기의 무엇을 통해 그 에너지를 인증받는가.
아마도 이것이 본편이 개인적으로 <두만강>에서의 고착된 형식미가 다시 본편에서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혹은
빈곤한 영화적 창의력으로 인해 아무도 작동시키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여전히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대해
행여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지하는 의구심으로 본편을 무력함을 넘어 무책임함으로 낙인찍으려하는 독자의 속내일 것이다.
반복되지만, 안성기의 기타는 박해일의 것이 되었지만, 결코 박해일은 감독으로서 사랑을 연출하지 못하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갑자기 윤동주의 시 속으로 자신을 장르의 통섭을 행해버리는 도피를 하고, 소리는 지정되지 말았어야할 영특함을 버리고
하나의 기타 연주 음을 고정시킴으로서 독자에게 다른 음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하게 한 채로 영화를 퇴행시킨다.
1장 ''의 엔딩에서 카메라가 포착하는 강물이 심연으로의 응시라면 4장의 강물은 카메라가 다리를 포섭한는 점 역시 동일하다.
영화는 언제나 무엇으로 어떻게를 말하지 못하거나 않고 오직 볼 수 없는 것과 지나가 버린 것들을 상상하라고 주문하지만,
정작 본편 안에서 그것은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상상력의 승리에 영화의 존재론을 과잉되게 부여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풍경>, <경주> 이후에 도착한 또 따른 경 鏡으로서의 본편이 진정 그 자리를 지켜내려고 했다면 굳이 왜 거기에 기타 음율,
사과의 말, 건축된 다리 아래의 강물의 표면이라는 화해와 회복이 <귀향>의 출산 이후에 매끈하게 도착해야하는 것인가?
아니, 왜 우리는 진정 필름이라는 80, 90년대의 시기를 그리워해야하고 어떻게 사랑 LOVE 하고 그리고 AND 그 이후 ....
를
행해야하는 지에 대해서, 거의 처음으로 선택한 한글 제목과 다른 영어 제목 <
Love and...>
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장률의 세계는 참혹한 죽음의 현장에 대한 무기력의 피곤에서 그리워해야할 유령들의 무책임한 제의가 된 것이 아닐까.
정신 변동에서 연주된 우울증 노인의 기타음이 조명부 퍼스트가 한강변에서 재현한 그 음률이라는 것을 나는 믿고싶지 않다.
<필름 時代 사랑>은 필름이라는 그리워해야할 매체와 시대에 대해 사랑이라는 전제를 내린 후 진행되는 이미지 놀이극이지만,
왜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사랑과 그 이후를 말해야할 정도로 중요한 과제인지에 대해 회복의 각성으로 응답하는 정답드라마다.
(시사)
민노총 “이재명의 전국민 25만원은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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