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 코린 2 - 줄리앙 동키 보이//미스터 론리

나는 이제까지 그를 4번 만날 수 있었다. 

하모니 코린은 1973년생이다.

 

 

지금은 <트래쉬 험퍼스 Trash Humpers>를 그다지 보고싶지 않다.

그가 계속 영화를 연출하게될까? 2번째와 3번째 연출작 사이에는 8년이라는 간극이 있다.

아마 아래 <미스터 론리> 글에서 반복하게 되겠지만, 나는 이 기간 그의 변화의 계기가 궁금하다.

 

2년 그리고 3년 누군가에겐 길다고 느껴질 시간동안 그는 침묵하다가 후속작을 발표했다.

제작비 마련부터 흥행, 배급까지 여의치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문제는 <줄리앙 동키보이>라는 밀레니엄 시기의 작품들에서

이후 작품들 사이의 주제 내적인 간극의 편차가 실망, 긍정이라는 단어 따위로 표현되기에는 너무 가볍다는 것에 있다.

( 이런 맥락에서 나는 위에서 <트래쉬 험퍼스>를 보고싶지 않다고 썼다.)

 

퍽 큐 시네마와 도그마 선언으로 기억될 그의 찬란한 초기작 <구모>와 <줄리앙 동키보이>가

도착한 곳이 변두리 마을과 가족의 기형과 죽음의 드라마였다는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구모>의 매혹적인 이미지들이 사라진 <줄리앙 동키보이>의 회전력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마추어리즘에 머물 것이다.

 

일관된 고집인 기존 제도과 가치관(특히 기독교)에 대한 거부와 정상인에 대한 혐오는

곧바로 지금 여기가 유지될 이유가 있는가에 대한 추궁과 반문으로 이어진다.

베르너 헤어조그가 <줄리앙 동키 보이>에서 아버지, <미스터 론리>에서 신부로 출연한 이유를

굳이 그의 <난쟁이도 작게 시작했다>나 <보이체크>, <피츠카랄도>를 경유해서 반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빌어먹게도 하지만이라는 표현을 허락한다면,

퍽 큐 시네마의 장점이자 한계인 바로 그 곳을 하모니 코린은 3번째 연출작 <미스터 론리>에서부터 인정하려든다.

광기의 외톨이들의 선언문은 미학의 소재로서 매혹적이지만,

사회에 저항하지 못하(지 않)는 예술가의 객기가 어느새 가혹한 귀향의 여로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적어도, <트래쉬 험퍼스>를 알 수 없는 지금,

<미스터 론리>와 <스프링 브레이커스>로 이어지는 후속작에서

주인공들은 그들이 지나온 행복한 광기의 길에서 쓸쓸히 돌아오는 쪽을 택하거나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생존이지만, 거기에는 자신의 얼굴을 나눠가진 타인의 죽음이 걸쳐있다.

대속이라고 말하기에는 미숙하지만, 돌아옴의 권리가 담긴 차표의 값은 저렴하지 않다.

즉, 세상은 여전히 어둠 속에 묻히고 주인공은 그저 홀로 돌아올 뿐이다.

정리하자면, 가련한 장면화가 사라진 자리에 비루한 무법자의 서사가 채워졌다고 할까.

 

 

1997년부터 이제까지 16년간 겨우 5편의 장편을 연출한 하모니 코린,

그는 이제 마흔 40의 나이에 이르렀고, 점점 더 선대의 작가들의 자리에 순응하는 것은 아닐까.

 

 

 

3. 줄리앙 동키 보이 Julien Donkey-Boy (1999) : 찬양과 낙태로 빛나는 가족 드라마 혹은 빙빙빙

 

지금 본편을 도그마 선언 하에서 읽고싶지 않다.

작금에 이르러 기존의 도그마 선언 집단이 이미 그 선언을 포기한 채 작업을 하고 있거나

하모니 코린 역시 당대의 경향성에 어떤 의미로 동의를 표하고 본편을 연출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데뷔작 이후 새로운 영화만들기의 귀재로 등극한 그가

당대의 영화 악동들의 흐름과 유명세에 무임승차한 것이 아닌가 부질없는 의심이 없는 것 도 아니다 .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 푸치니의 오페라 속 유명한 노래가

도그마 95 인장 뒤에 감독 이름을 없애자는 선언에 동의한 채로 본편에서 처음으로 들려질 때

데뷔작 <구 모>에서 화면이 등장하기도 전에 먼저 다가섰던 구질구질하고 유치한 욕설 노래가 생각났다.

물론, 두 노래의 차이에서 감독의 진전이나 성숙을 상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니면, 적어도 아버지의 영화에 대한 도그마 선언의 파기 선언적인 의미에 대해서

그가 이 노래를 통해서 동지애를 표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고싶지 않은 이유는

지금 나는 본편을 하모니 코린이라는 여정 안에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위 노래 속   아버지에 대한 자살 위협이 곧바로 희극적인 상황극으로

본편을 지배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딸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비극적인 은유는

능히 본편이 지니는 가족 해체극으로서의 외피를 감지하게 하는 기능으로서 충분하다.

 

본편의 거의 유일한 이미지로서 레슬링이나 성가대의 노래 춤보다 더욱 진하게 배어나오는 것은 회전이다.

오프닝의 여성 피켜 스케이팅 선수의 회전에서부터 시작해 친절하게 반복되는 빙판 위 스케이팅의 회전이나

집 안에서 클로에 세비니가 임신한 채로 보여주는 발레의 회전까지 영화는 회전 자체를 하나의 모토로 삼는다.

 

당연하게도 이 회전은 하나의 세계관이다.

퍽 큐 시네마 안에서 윤리가 거부되는 방식이자, 세상 속에서 본편의 가족들이 주체가 되는 방법론 그 자체가 된다.

베르너 헤어조그조차 57세의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덤블링을 보여주면서 이를 반복 명확하게 구현하지않는가.

그러므로, 본편의 거친 카메라 입자와 제한된 실내에서의 폐쇄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부연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오프닝의 살인이 엔딩의 낙태와 수미 쌍관적으로 연결된다고 통찰할지도 모르지만,

그것 역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전작 <구모>에서 관객을 흡인력있게 당겼던 쫄깃한 이미지의 전시마저도

본편은 거의 포기하고 오로지 가족 해체극의 영화사 안에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려는 관습적인 태도를 취한다.

 

<주머니 속의 주먹>이나 <테오 레마> 혹은 < 비지터 Q>의 계보 안에 본편의 위치는 계산될 테지만,

선배들의 그것이나 일본의 가족 해체극 장르와는 확연히 다르게 본편은 감독의 실험성과 극단성을 종횡한다.

굳이 근친상간이나 가정 폭력, 외부로터의 침입 없이도 이미 가족은 그 자체로 정상/비정상의 경계를 무시한다.

 

그들을 모두 동키-당 나귀-바보라고 쉽게 매도할 수 없는 이유는

집 외부로 카메라가 이동하여 볼링장이나 교회 예배 등을 방문할 때

고의적인 관습적으로 유치하게 그들을 폄하하는 시선이 지배적으로 극을 포장하기 때문이다.

 

이들 가족의 자유성은 대안적이지는 않지만, 스스로 그럴 이유도 가능성도 없다고 선언하면서

외부에 대한 쉴 새 없는 중얼거림과 가족들 간의 대결과 훈계를 통해 정상성을 획득하지 않기 위해 긴장하고 있다.

흑인 맹인 집단이나 신체 장애인의 연주 등이 주인공 줄리언을 흥분되게 하는 지점은

교회 예배에서의 가스펠 송의 광란적 열창과는 다르면서도 동일하다, 눈물과 환호성의 부등식.

 

몇몇 정지 화면이 가지는 매혹은 고의적으로 영화의 격을 떨어뜨린다.

이는 전작 <구모>가 범했던 실기, 즉 아름다워져야한다는 천치의 미학에 집착한다.

라스 폰 트리에의 <백치들>과 가스파 노에의 <아이 스탠드 얼론>이 연상됨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 가족의 기기묘묘한 행위들은 건조한 일상과 윤리의 무덤덤함을 세탁하는 데 몸개그로 몰두한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지 않고 바보=당나귀로 호명되는 것이 두렵다고까지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극 내내 회전은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되어 똑바로 서기를 거부한다.

 

또다른 실기. 후반부 스케이트장에서의 클로에 사비니의 사고와 낙태 그리고 사체 영아 유기, 이불 속 하얀 얼굴

거기에 유치하게도 더해지는 소년의 노랫가락은 친절하다못해 노골적이다.

결국   수미쌍관으로 배치된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 노래.

하지만,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자살하겠다라는 선언을 제대로 전한다.

 

<구모>와 <줄리앙 동키보이> 두 편의 연속된 퍽 큐 시네마가

콜라쥬, 거친 입자, 심신의  훼손, 성경, 죽음으로   세상의 불균질과 광란에 기꺼이 탑승하고자 할 때

본편이 1999년이라는 시기에 걸려있었음은 괘나 의미심장하다.

 

 

<줄리앙 동키 보이>는 밀레니엄의 전야제로서 더할나위없는 행복한 가족의 초상화를 광기적으로 묘사하고

회전과 오페라라는 두 축의 반복을 통해 정체 된   정상성에 대해 가소로운 퍽 큐를 날리는 가난한 소외극이다.

 

 

4. 미스터 론리 Mister Lonely (2007) : 8년이라는 시간은 당신을 애잔하게 했는가?

 

시작과 끝은 다르다. 아니, 시작에서 끝까지는 사연이 있다. 비록, 그것이 같은 모습일지라도,

한 남자가(그는 아마도 마이클 잭슨을 모사하는 남자일 것이다) 자신의 체구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모터싸이클을 타고 뒷 줄에 원숭이 천사 인형 하나를 연결해서 그것이 바람에 휘날리는 광경은 분명 노골적인 장면화다.

 

그것이 오프닝과 엔딩에서 거의 동일한 자세로 배치될 때, 본편의 중간이 무의미하다는 곡해를 낳게한다.

각성이라고 말하기에는 창피하지만, 애시당초 돌아갈 이름이 없는 이들에게 타인의 얼굴이란 행복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에 날리는 원숭이 천사 인형이나 조그만 모터싸이클만큼이나 위태로운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원숭이를 소중하게 안고있는 수녀의 모습 등은 어여쁜 친절이라고 해도 좋다.

어쩌면 유치한 정경, 당신이 어디에서 살고있는가에 대한 영화의 가능한 모든 선언문.

 

8년동안 하모니 코린은 기적을 찾아헤맸을까?

한결같이 아니 거의 우군이나 아버지처럼 베르너 헤어조그는 그를 지원할 배우와 같이 곁에 있다.

전작인 <줄리앙 동키보이>에서의 이완 브렘너와 클로에 세비니의 자리에

드니 라방, 사만다 모튼, 디에고 루나 등이 채워지고 심지어는 레오 까락스까지 질문자이자 정리자로 한몫한다.

 

그 해 깐느에 출품되었던 본편은 얼마만큼의 환영이나 비아냥을 받았는지 알 수 없고 관심도 없지만,

6년이 지난 지금 관객이 맞이하는 본편은 일종의 전환점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더 이상 거친 입자는 없고, 도그마 선언은 일회용이었으며,

신체 기형의 장애성 대신에 기용된 것은 광대이다.

 

광대라는 이름 하에서 드니 라방은 찰리 채플린을

극의 고백을 이끌어가는 디에고 루나는 마이클 잭슨을

마이클 잭슨을 모사인의 집으로 불러들이는 마릴린 먼로 역학을 사만다 모튼이 연기하는 지점까지는 흥미롭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링컨과 영국 여왕, 교황의 자리까지 노련한 조연배우의 연기로 채워진다면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즉, 모든 아이콘들의 광대화라는 측면에서 엿보이는 하모니 코린의 오래된 세계관의 반복.

 

나는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하는 마이클 잭슨의 모사인을 연기하는 디에고 루나와

점점 더 살이 쪄서 도저히 마릴린 먼로의 하얀 드레스가 불가능한 사만다 모튼을 비롯한

별로 닮지도 않았고 닮을 수도 없으며 그들을 모사하며 연기함으로서 쇼비즈니스를 개척하려는

일단의 공동체 자체가 가지는 허황된 꿈, 단 한번의 공연과 마릴린 먼로의 죽음 모두가 싱그럽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전혀 예측할 필요가 없이 꼴라쥬로 이루어졌던

<구모>와 <줄리앙 동키보이>의 천연덕스러운 아우라가

한낱 모든 작가들이 흠모하는 삼류 연예인들의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내러티브로 바뀌는 지점에 대한 실망일 것이다.

 

물론, 본편에는 날으는 수녀들의 기적 이야기가 있다.

너무나 친절히 문을 열고 비행하다가 떨어지는 시퀀스를 삽입함으로서 충분히 예상되었던 기적은

정작 그녀들이 기존 제도의 인증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산산조각날 수 밖에 없다.

기적은 가난한 자들의 지극히 각별한 영적 소유물이니, 우리는 그것을 용서해주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양떼의 죽음과 유명인사의 모사인들로 모인 삼류 연예인 집단의 일상에서

그들이 거의 자신의 모사인 의상을 벗지 않는다거나 서로 유명인사의 이름 그대로를 부르는 등의 당연한 외피에서

손쉽게 그들의 존재론은 기실 무에 가까울 수 밖에 없는 대중에 다름 아님을 유추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에 온 관람객 몇몇은 역시나 저지능의 사람들로 보인다.

 

마이클 잭슨과 마릴린 먼로 그리고 찰리 채플린 사이의 삼각 관계 자체가 가지는 파급력이 크지 않고

드디어 마이클 잭슨의 의상을 벗고 일종의 쇼비지니스 업자인 레오 까락스를 만나는 디에고 루나의 대사들은 유치하다.

실존 혹은 본질, 가면과 이면 등의 단어 따위로 충분히 유추될 수 있는 상황에

기어이 하모니 코린은 광란같은 축제에 빠진 이들의 밤거리를 더해버린다.

 

이보다 더 영화를 애잔하게 하는 것은

놀랍게도 실패한 공연 뒤에 밤길을 걷는 모사 연예인들 사이에 흐르는 친숙한 뮤지컬의 노랫가락이며

더 나아가 마이클이 스스로 그리는 달결 속 그들의 얼굴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애잔함을 넘어 미련해보인다.

우리가 하모니 코린에게 기대했던 것에서 그는 스스로 전혀 다르지만 익숙하고 친밀한 인사로 회귀해버렸다.

그것은 마치 본편의 주제곡은 '미스터 론리'가 구성지다 못해 철지난 유행가처럼 들리는 이유와도 같다.

 

<미스터 론리>는 기적을 발견하지 못한 사내가 8년만에 귀환하여 부르는 삼류에 대한 예찬이지만,

동시에 자신도 타인도 될 수 없는 모든 멍청한 대중들에 대한 너무나도 익숙한 외로움에 대한 점멸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