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Logan (2017) : 존속 살인이라는 가족 탄생 비화
제임스 맨골드가 이제까지 연출한 10편의 작품 중 <캅 랜드>, <처음 만나는 자유>, <아이덴티티>, <앙코르>, <3:10 유마>와
본편까지 모두 6편을 관람했지만, 본문은 갸날픈 감독론에서 영화를 탐색한 결과는 아니다. 제임스 맨골드가 할리우드에서
거의 모든 장르에서 자신의 관심사이자 위험하지 않은 가장 오래된 주제인 타자와의 접촉을 통한 주체의 해방을 진술했음은
이미 접한 바 있는 위 5편의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본문은 이같은 감독의 논지를
잠시 축약시키고 마블적 세계관 하에서의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조차도 폐기한채 단편적으로 기술한 감상의 여과물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꼬>의 영화적 공기는 빈곤에 있고, 그 종착역에는 어머니 오린의 죽음으로의 산행이 놓인다.
김기영의 1963년작 <고려장> 역시 동일한 맥락이지만, 고려장 자체의 문화사적 실재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여튼
두 편의 영화에서 가족은 죽음으로서 보존된다. 문제는 여기서 죽음이 누구를 피해자로 하나인데, 모순적으로 그 역시 가족이다.
하지만, 위 두 편의 영화에서 피해자는 여성 어머니라는 점은 단지 감성의 측면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위한 방편이라해도
그녀가 잉태의 체험을 가진 모성의 근원지임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 아버지의 부재와 비견할 때 자못 흥미로운 지점이다.
가족이라는 종의 멸절 혹은 보존이라는 기호에 부성보다는 모성이 적확하다는 관념은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효율성을 담보한다. 이는 적어도 대개의 장르 안에서는 타당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가부장제 장르의 최첨병인 웨스턴과
조우할 때 발생한다. 이분법의 도식화로서의 매혹의 정점이자 동시에 그것을 교란 붕괴시키는 것 역시 장르의 역사로 채워진
서부극에서 남성은 땅에 정주하는 자이기보다는 땅으로 흘러들어오는 캐릭터였다. <옛날 옛적 미국에서>의 엔딩에서
여배우
CC가 철도 공사장 인부들에게 물을 건네는 장면이나 <셰인>에서 농장을 지키는 여성으로의 이미지 투영은 이의 대척점이다.
( <셰인>에서 대지의 이미지는 개척민 존보다 그의 아내 마리안에게 투영되고 이는 마리안과 셰인의 교감으로도 보족된다. )
서부극에서 남성/아버지의 부재는 무법자로서 서사의 중심부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성을 가장하지만, 정작 그들은
여성/어머니 대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가족, 즉 출산의 한쪽 축을 담당하기를 거부당하거나 거부한다. 이로부터 방랑자의
우울증과 자아도취적 존재론을 도출하는 것은 언제나 남성 관객들을 충족시킬테지만, 그들은 결국 등장과 부재를 반복하는
외적 존재로 추락한다. 본편은 웨스턴의 이같은 전통에 뜬금없는 질문으로 남성만의 가족 신화는 가능한가라는 제기한다.
찰스-로건-칼리반 간의 관계는 병든 노인을 돌보는 역할 분담체로 일종의 불구성을 보인다. 이 구성원에서 기존의 여성 역할은
알비노 돌연
변이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집안 일과 치매에 걸린 찰스를 담당하며 돌연변이의 추적 능력의 칼리반이 담당한다.
그들의 거주지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어느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위태성을 노정하며 심지어 찰스의 거처는 X-맨
시리즈에서 돌연변이를 탐색하는 장치였던 세레브로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물이 없는 녹슨 저장고라는 점은 중의적으로
이들의
불임성을 지시한다.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에 대한 명백한 반론으로서 등장하는 로라의 국적이나 로건이 운전하는
차량 내의 카우보이 모자의 남성이나 USA를 외치는 만취된 젊은 남성들 등은 잠시 당대 미국 행정부에 대한 조롱으로
본편을 잠시 기울인다. 로라와 그의 동료 유전자 변이 친구들이 캐나다 방면으로 가려 하는 의도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X맨 시리즈를 성적 소수자 담론으로 독해했던 낡은 방법의 흠결은 그들에게 진실된 소수자성의 무력감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데 있는데, 본편은 적어도 그같은 맥락에서는 늙고 병든 치유되지 않음이라는 선정성을 장착함으로서 다소 빗겨나가려한다.
이같은 외피에 웨스턴이 장착될 때 상기되는 작품은 돈 시겔의 <최후의 총잡이>일 것이다. 해당 작품의 주인공 존 웨인을
좀 더 품격화하여 존 포드의 예언적 진술을 더하자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추가할 수 있겠지만, 언어와 국적이
다른 실질적인 딸인 로라를 거대 회사로부터 보호한다는 자연/과학의 이분법에서 <수색자>의 그림자 또한 언급할 수 있겠다.
의외로 본편에서 트랜시젠이라는 거대 회사의 존재는 부차적이다. 그들은 오히려 가족의 붕괴와 잉태를 위해서 소비된 존재다.
이미 관계적 파산에 가까웠던 찰스-로건-칼리반의 불구적 남성 가족의 상황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으로 균열을 맞이하는데,
트랜시젠 회사는 이 지점에서 대단히 양가적인 잉태와 반영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하나는 당연히 로라로 호명되는 일련의
새로운 돌연변이 인간들인데, 흥미롭게도 그들은 유전자 조작에 가까운 출생으로 시리즈의 전작들에서 등장한 태생으로서의
돌연변이와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소수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소수자로 만들어진 그들은 결국 감정이라는 주체성을 획득하는
순간 회사의 방침이었던 사회의 무기화로서의 용도를 상실하게 되고 서로를 공동체화 가족화할 수 있는 생일 파티로 결합된다.
즉, 이전의 돌연변이와 본편의 로라와 같은 돌연변이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감히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집단 병동에서 출생시부터 서로 알고지낸 로라 부류의 소년들의 공동체는
이전에 서로 반목하거나 흩어져 생존했던 X 맨들과 하나가 될 수 없다. 이들 사이에는 케이크와 생일 축하 노래가 놓여있다.
그렇다면 보존되어야할 집단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곧 치유가 아닌 폐기라는 강수와 연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려장이거나
자결이다. 이를 위해 편리하게도 트랜시젠은 소년이 아닌 성인으로서의 로건의 분신을 창조하여 대역을 행하도록 조력한다.
로건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는 부친 살해의 역할을 윤리가 없는 로건의 유전자 분신 x-24는 행한다. 흥미롭게도 찰스는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이 동료 돌연변이들을 살인한 사건을 회상하거니와 죽기 전 로건은 자신이 한 직이 아니라고 토로하기까지 한다.
이제 찰스에 대한 고려장은 행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로건 그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관객이 이미 본편 속 <셰인>의 엔딩을
알고 있다면 그가 말 위에서 떨어졌는지 혹은 떨어져서 죽어야하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시청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된다. 바로
로건의 죽음이다. 하지만 로건의 자결은 그 이전에 또다른 유사 아버지인 닥터 라이스를 처단한 이후에야 가능한 행위이다.
흥미로운 것은 닥터 라이스를 처단할 때 로건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권총을 발사한다는 점일게다. 여기에 서부극의 개척민
잔영으로서 흑인 농장 가족을 삽입하고 그들을 백인 농장주에게 억압받는 인물로 설정함으로서 본편의 젖줄이 웨스턴임을 결코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백인 농장주 무리들과의 첫 대결에서 로건은 이를 죽이지 않고 쫓아내지만, 그의 분신인 X-24는 찰스를
죽이고 흑인 농장 가족을 살해하고 백인 농장주 무리까지 모두 처단한다. 여기서 의문은 왜 흑인 가족은 죽어야하는가에 있다.
그들의 캐릭터적 효용성은 첫째 찰스-로건-로라의 가족화를 호명함이고 둘째는 트럼프의 정치색과 조응하는 인종 탄압이라면
X-24는 흑인 가족을 살해하여 웨스턴의 이분법 신화 소멸의 장르성을 소환하여 남성/무법자/총잡이를 자극적으로 죄인화한다.
흑인 가족이 죽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로건이 죽어야하기 때문에 그들이 소비되는 형국이다. 혹은 USA를 구출하지 못하고
도피했던 로건 류의 남성들에 대해 일종의 윤리적 응징으로서의 사례라고 해도 좋겠다. 권총으로 돌아가 애시당초 로건은 회사의
추적자인 피어스에게 '총을 싫어한다'라고 말했음에도 이와 달리 결말부에서 권총으로 유사 아버지인 닥터 라이스를 처단한다.
즉, 웨스턴 장르의 정화인 권총이 꼭 거기서 발사되어야 하고 그 대상은 또 한번의 친부 살해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같은 권총의
효용은 이제 로건 자신에게로 향한다. 로건이 죽게되는 것은 분신인 X-24와의 대결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X-24를 처단하는 것은
로라의 아만타디움 총알 한방이다. 로라의 총격이 유사 아버지 로건을 살해한 것이은 또 한번의 고려장이자 세번째 고려장이다.
땅을 지키는 것이 아닌 바다로 가기 위해 "썬 시커'를 구입하고자 했던 로건은 일종의 자격 부재에 시달린다. 그는 웨스턴의
총잡이가 그러했듯 마을 공동체를 지속시키기 위해 잠시 간의 활약에만 한정되고 석양 너머로 사라져야하는 존재다. 다만 ,
차이점이 있다면 본편은 그와 같은 과정에서 정치적 혹은 주체적 책임을 아버지들에게 부여하고 그들을 딸이 처단한다는
것에 있다. 이 지점에서 기존의 소녀/딸의 아저씨/아버지 보호 액션극 장르와 본편은 완전히 궤를 달리하고 있다. 아버지들은
약물이
아니면 무력하고 도피 일변도의 분노를 조절할 수 없는 죄의 참극을 내재하여 가족으로서 폐기되어야할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비겁하거나 혹은 최소한의 에의를 다하기 위해 본편은 찰스가 웨스트 체스터에서 벌인 동료 X 맨 살인극을 플래쉬백으로
삽입하는 흥행성 묘수를 선택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대신해 오프닝에서 로건이 차량 절도범들을 도륙하는 초법성을 고발한다.
아들이 두 아버지를 살해하고, 딸이 다시 아버지를 살해할 때 의미심장한 것은 무덤의 변화다, 찰스는 로건에 의해 흙 아래
묻히지만,
로건은 로라와 그의 동료 소년들에 의해 돌무더기 아래 묻힌다. 흙과 돌의 차이는 좀 더 강인한 단절의 의지일 수 있다.
굳이 엔딩은 로라가 이전의 캐릭터와는 달리 감성적으로 <셰인>에서의 셰인의 운명론을 대독하는 것으로 마감된다. 살인에 대한
윤리로부터의 형벌이 그 누구도 아닌 딸에 의해서 징치될 때 본편은 웨스턴 내 남성 무법자에 대한 숨겨진 배척을 드러낸다.
땅은 여전히 남성들 간의 피로 물들고(추적자 중 여성은 없다.) 그 위에 소년이 아닌 소녀가 애도할 때 대지는 공포가 된다.
<로건>은 가족 내 불구적 존재인 남성/아버지는 어떻게 소비되고 절연되어야하는가에 대한 말하지 않았던 바의 뒤늦은 고백이며
남성의 역사를 곧 죄의 역사와 동일시하여 과감하게 부친 살해를 행함으로서 대지/여성을 보존하려는 전통적인 웨스턴이다.
(여행)
터키 물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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