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게시판 글들을 읽다가 저로하여금 생각을 좀 하게 만드는 글을 보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잠깐 언급되고 마는 부분일 뿐이었으나
배대슈는 관객들이 기대한 "양립하지 않는 두 영웅의 정의"라는 소재를 어처구니 없는 내용전개로 말아 먹었다는 언급을 보는 순간,
갑자기 뭔가가 머리를 강하게 치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또다시 모자란 글을 끄적여 봅니다.
강조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그 지적에 대해 전 약간의 이견이 있는데요..
잭스나이더는 처음부터 vs를 굳이 v라고 하는 등 자신의 영화 속 두 영웅은 대립한다기보다는 일종의 만남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물론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 속에서 그 설명은 빛이 바랬고
결국 두 영웅의 대립!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와 같은 컨셉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관객은 "배트맨과 슈퍼맨은 어쩌다 싸우게 되고, 그 결과 누가 이길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 영화를 관람했지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처음엔 대체 어떻게 하면 트리니티를 가지고서 이런 똥덩어리 같은 영화를 만들수가 있는 것인가!!
하고 정말이지 많이 실망하고 화내고 울분을 터뜨렸었는데요,
잭스나이더가 했던 말들, 지금도 하고 있는 말들, 그리고 여러 리뷰들을 찾아보면서
약간의 재평가는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배대슈가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은 결단코, 절대 아닙니다. 똥은 똥입니다.
다만, 배대슈는 처음부터 "양립하지 않는 두 영웅의 정의"를 그리고자 만든 영화가 아니라,
아직 영웅으로서 제대로 된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둘을 만나게 함으로써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도록
서로가 서로의 발판이 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과정을 그리려고 시도했던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슈퍼맨은 영웅이란 어떤 신념을 추구해야 하는 건지, 누구를, 언제,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
행동을 하기 전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건지, 그에 따른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고뇌는 전혀 없이
그저 두 아버지가 한 말들에 수동적으로 이렇게 하라니까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며 끌려가던,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희생은 신경도 안쓰는, 영웅이라기엔 너무 미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배트맨 역시 마찬가지죠. 처음엔 어땠을지 모르나 지금은 스스로를 그저 범죄자로 치부하고
자신이 낙인을 남긴 악당이 결과적으로 죽든말든 신경 안 쓰는,
히어로라기보다는 안티 히어로에 더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메트로폴리스 사태를 격으며 그는 제 손으로 슈퍼맨을 죽이겠다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불사하게 된,
(그는 그것을 사냥이라고 둘러 말하지만 그게 그거죠.) 아무튼 매우 불안정상 상태가 되어있었습니다.
슈퍼맨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게 만든 이였습니다.
이는 어느날 갑자기 골목 끝에서 나타나 아무 잘못도 없는 부모님을 죽인 악당과 오버랩됩니다.
배트맨은 어렸을 때도 그저 부모님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슈퍼맨이 나타나 메트로폴리스를 엉망으로 만들며
자신이 유사 가족으로 여기는 웨인기업 사람들을 죽게 만들때도 그저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부모님의 경우로 인한 트라우마가 그를 20년간 배트맨으로 활동하게 한 동기로 작용했고
그것이 그를 서서히 지치게 하고 있을 무렵 유사한 트라우마를 슈퍼맨이 또다시 새겨준 것이죠.
설정집에 실린 이야기를 토대로 하면 당시 무너지던 웨인 기업 건물 안에는 아이들도 열 명 가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의 아이죠. 아무 잘못없는 수십명의 부모와 아이들이 그의 눈앞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배트맨은 그대로 꼭지가 돌아버리죠.
애초에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한 적 없던 그는
배트맨은 불살주의를 고수하는 영웅이니 매우 깊은 고뇌를 통해 슈퍼맨과 싸울 것을 결심할 것이라는
관객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당연하다는 듯이 슈퍼맨을 죽이겠다고 다짐합니다.
슈퍼맨의 변절에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확실한 것으로 치부해야 한다고 확고한 태도로 말하면서요.
여기서 이미 관객들은 그동안 관객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두 영웅에 대한 기대치를 배신당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 이 배신감을 극복하기 위해선 적어도 자신을 개연성 있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설득해주길 바라게 되죠.
하지만 잭스나이더 감독은 이정도만 보여줘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게 어떤건지 알겠지?? 하고
너무나 불친절하게 영화를 전개해나가며 관객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말죠.
그래서 실망한 관객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연출이었던 느금마사를 집중적으로 욕하게 되는 거고요.
아무튼, 다시 말하던 부분으로 돌아오자면,
애초에 배대슈에서는 양립하지 않는 두 영웅의 정의랄 것 자체가 없었습니다.
슈퍼맨은 자신의 존재 자체로 된 거 아닌가? 구해주고 있잖아. 더이상 뭘 어떻게 해? 하는 입장에 있다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뒤늦게 어, 이게 아니었나봐. 영웅노릇하는 거 되게 힘드네;; 하지 말까? 하는 상태였고
배트맨은 룰은 무슨, 우린 그냥 범죄자예요. 라는 대사에서 보이듯 스스로를 악당과 같은 존재로 정의내리고 있는 상태였죠.
극단적으로 단순화 하자면 둘다 "내가 옳다!!" 라고 외치며 싸우는 게 아니라
배트맨은 "됐고, 넌 위험요소니까 걍 죽어라!!" 하며 덤볐고,
슈퍼맨은 "우리가 왜 싸워야 되냐??? 난 엄마를 구해야 한다고!" 하고 항의했던 것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관객의 기대를 정면으로 배신하는 그런 '느금마사' 장면이 연출되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진지한 싸움이 아니었다는.... 크흡....ㅠㅠ
뭐.. 이제와서 정리하며 생각해보니 그런 면에 있어서는 잭스나이더가 나름대로 독창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구나 싶긴 했습니다.
다만 너무 자기 생각에 빠져서 전혀 다른 기대를 안고 좌석에 앉을 관객의 입장은 너~~무 고려를 안 했다는게
이 영화의 결정적인 패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장면장면의 미장센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고, 캐스팅 역시 완벽에 가깝게 되었으니..
지금으로서는 제발 잭스나이더가 저리는 정신 좀 차리고 찍어주길 기도할 따름입니다.
(자유)
일본 지진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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