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우가 오픈베타를 하던 첫날.
괴상망측한 언데드가 끌려서 사제를 만들고 첫 퀘스트를 받아 앞뜰에 좀비들을 잡으러 나갔는데, 거기있던 늑대가 혼자 쥐새끼보고 쫓아가서 물어죽이는 거 보고 충격받았다. 모니터안의 그 늑대가 순간적이나마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풀벌레소리, 스산한 바람소리등등 작은 부분이지만 그 하나하나들이 어우러져서 모든게 단순히 그래픽과 사운드가 아니라 내가 있는 '환경'처럼 느껴졌기에 더욱 그랬던거 같다.
2. 로데론에서 열심히 퀘스트를 하는데 그림자 성채라는 곳을 가란다. '인던'이라는 개념도 없던 때라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몰랐던 시절. 몇몇이 팀을짜서 들어갔다가 입구에 있는 첫몹한테 줘터지고선 성채는 그냥 무서운 곳으로 각인이 되버렸다. 어쩌다가 30랩이 다 되가던 타우렌이 건너와서 파티를 짰고 우리 언데드들은 그와 함께 차근차근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달려서 2시간동안 두번째 넴드까지 가보고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얼마후 그림자 성채를 기어코 공략하고야 말겠다는 호드가 단결하여 4파티정도 되는 공대를 구성하고선 (당근 메인탱, 메인힐 그런 개념은 없었다.) 성채를 공격하긴했다. 얼떨결에 우와아 다 죽이자! 하고 합류하긴 했는데 결과가 기억나진 않는다. 어리버리 파티원 따라다니며 힐만했던 기억뿐... 그런데도 드레노어까지 온 지금에 와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던은 역시나 그림자 성채다.
3. 나중에서야 문득 깨달은 건데 난 60만랩을찍고 갖은 4대인던을 수십차례 돌았지만 공략이나 몹들을 제대로 기억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사제다보니 항상 내 시선은 왼쪽위 파티원의 피창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탓이다. 당시엔 어글한번 튀는 순간에 딜러한명 눕는데다가 탱살리기도 벅차던 시절이라 만피상황이라도 긴장을 풀수가 없었다. 난 내 엠관리하면서 딜러도 소생이나 순치는 잘 넣어준 사제에 속했는데, 천민중의 천민취급받던 도적은 붕대자생이 기본소양이었던 시절이라 소생이라도 들어가면 '고맙습니다. 사제님' 소리도 종종 들었었다.
4. 오그리마에서 누군가 잡담중에 스랄에 '님'자 안붙이면 컨셉이 아니라 진심으로 불같이 화내던 사람들 있었다. 진짜로.... 몰입감은 정말 죽여준 게임이긴 했다.
5. 언더시티는 일종의 개미지옥같은 곳이었는데, 먼가에 홀린 듯 은행이 있던 중심부를 빙빙 돌던 신입언데드는 흔했고,
'나가는 입구가 어디에요? 한시간째 헤메고 있어요. 엉엉 ㅠ,ㅠ'
이런 아우성이 날마다 울려퍼졌다. 특히 트롤, 오크, 타우렌은 더욱 심했는데 엘레베이터가 있는 곳을 알려줬더니 올라간 후 반대쪽 엘레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울부짖는 유저도 있었다. 마우스부셔버리고 싶을 그 심정은 언데드라면 다들 공감했었을 것이다.
정식서비스이후 쟁이 활발해지고 대도시침공도 종종 있던 시기에 얼라이언스에게서 언더시티가 난공불락이었던 이유는 실바나스가 어딨는지 당췌 찾을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한번 들어왔다가 죽으면 시체찾으러 다시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선봉대 따라서 얼떨결에 들어왔던 대다수의 유저는 입구를 못찾고 유령으로 떠돌다가 결국엔 무덤에서 부활후유증을 달고 살아날 수 밖에 없었다. 부활후유증을 달고 있는 얼라이언스를 격퇴하는건 정말 식은 죽 먹기였고... 얼라이언스에겐 나가기도 힘들지만, 다시 들어오기도 어려운 곳이 언더시티였다.
추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신기한게 이 모든 감동을 14인치 CRT모니터에서 느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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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장기간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좀 쉬면서 와우를 다시 했는데, 이래저래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와망소리도 자주 나오는데 컨텐츠도 좀 쥐어짜는 감이 없지 않아있고, 무엇보다 주력와우저들이 이젠 다들 직장인이 된게 크지 않을까 싶네요. 와우를 여전히 즐긴다하더라도 예전처럼 꾸준히 하는것도 어려우니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게 되는데, 요즘 며칠해보니 와우는 역시 라이트하게 즐기는 것보단 하루 4시간이상씩 매일 하드하게 달려줄때가 가장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한두시간씩 라이트하게 즐긴다는 건 사실 즐긴다기 보다는 아쉬움을 달래는 정도인것같네요. 가장 재밌었다는 리치왕은 아예 해보질 못했고 판다때도 부스팅으로 잠깐해봤지만 드군은 정말 컨텐츠가 짧은 것같아요. 빡세게 달리면 한달내에 웬만한 컨텐츠를 다 소비가 될것같네요. '와우야 아프지마'라고 하기엔 와우도, 유저도 많이 늙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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