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191053001&code=990100
[정동칼럼]새 정권다운 대학정책을 거듭 촉구한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교육부가 내년부터 시행할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지난 정권 때의 1주기와 달라진 게 없음을 또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지난 9월에 광주, 부산, 서울에서 3회의 의견수렴 설명회를 가진 후 기존 계획의 틀을 그대로 밀고 나갈 기세이다. 이런 대학정책은 촛불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권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다.
지난 9월22일 서울교대에서 대학정책학회 주최로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상지대 정대화 총장대행을 비롯한 토론자들은 2주기 대학평가를 1년 유예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더 나은 평가방안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교육부 대학평가를 아예 폐기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1년의 유예 요구는 누가 들어도 합당한 제안이었다.
토론회의 유일한 발제자는 현 정권의 새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 참여한 학자였는데, 마무리 답변에서 뜻밖에도 2주기 대학평가를 유예하면 예산 증액이 어려워 일정을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교육부 간부도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이들 발언의 맥락은 같은 날 전남대에서 열린 1차 설명회에서 나온 교육부 실무자의 발언과 궤를 같이 한다. 대학평가는 재정지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민과 예산당국을 설득해야 하며, 내년의 평가 결과를 근거자료로 제시해야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인 일반재정지원 4000억원 증액을 2019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일의 선후가 바뀐 형국이다. 우리의 고등교육 예산 규모가 부실할뿐더러 대학개혁에 예산이 많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예산만 있다고 일이 풀리지 않으며, 돈이 잘못 쓰이면 오히려 도려내야 할 곪은 부위가 더 깊이 썩을 수도 있다. 예산 타령에 앞서 탄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정책 결정이 우선이다.
설명회에서 부각된 2주기 평가 계획의 쟁점 중 두 가지만 따져보자. 첫째, 법인 책무성 지표는 새 정부 출범 전인 3월에 발표한 기본계획에서 2단계 평가에 속해 있다가 지금은 1단계로 옮겨졌다. 교육부는 이를 새 정부의 국정 기조에 따른 것이라고 내세우지만, 법정 부담금 지표를 중간값으로 낮게 바꿔 또다시 부실비리사학이 쉽게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주었다. 오래 전의 일이 생각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14년 9월의 1주기 평가 공청회에서 제시된 정성평가지표인 ‘학교운영의 투명한 공개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후 슬그머니 사라져버렸고, 법인 책무성은 아예 평가지표에서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둘째, 교육부 실무자는 2주기 평가의 입학정원 축소 목표가 당초 5만명이었지만 실제로는 2만명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한 대학 관계자들을 안심시키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칼럼에서 지적한대로 매년 급격히 줄어드는 고교 졸업자는 2023년에 약 40만명이 되며, 진학률을 70%로 높게 잡아도 대학 지원자는 28만명에 불과하다. 50여만명의 현재 정원을 6년 안에 20만명 가량 줄여야 수급이 겨우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2주기(2018~2020년)에 고작 2만명을 줄이면 대체 3주기(2021~2023년)에는 한꺼번에 몇 명을 줄일 요량인가? 애초의 교육부 안대로 6년간 10만명 이상 감축해도 턱없이 모자란다. 지역마다 대학 통폐합이 적절하게 성사되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폐교가 줄을 이을 비상한 상황인데, 정작 위기를 불러온 당사자인 교육부의 무책임한 자세에 말문이 막힌다.
사실 입학정원 감축에 집중하는 대학정책은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초보적 대응이다.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연구를 뒷받침할 학문정책이 필요하고, 입학만 하면 졸업이 가능한 관행도 엄정한 학사관리를 통해 바꿔야 한다. 또 대학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위해 전문적인 상시 감사 체제가 필요하며, 수구 정권들이 망가뜨린 전문대학 교육체제를 개선해야 기업이 요구하는 우수 인력도 공급하고 사회적 양극화도 막을 수 있다.
교육부의 행태는 대학을 인위적 개입 없이 시장에 맡겨 망할 학교는 망하게 둬야 한다는 시장논리보다 못하다. 완전경쟁의 시장은 경제학 교과서에나 나온다지만, 차라리 교육부가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합리적 선택을 위해 대학이라는 ‘상품’의 정보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알리는 공정한 감시자 역할에만 충실하면 어떨까? 최소한 지금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며, 대학재정지원의 미명 아래 줄줄 새는 엄청난 세금도 아낄 수 있다. 새 정부는 대학정책의 사회적 공론화부터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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