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 시절유감 (時節有感) PART 6 - 설렘의 갈림길에 서서

한국 tvN에서 방영중인 TV 시리즈 <응답하라 1988>(2015)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그 때 옛말은 아득하게

지워지고 없겠지요

(중략)

슬퍼하지 말아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그리운 사람 올 것 같아

문을 열고 내다보네

--- 이정석, <첫눈이 온다구요>(198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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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첫눈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나에게 떠오르는 첫눈의 이미지는 바로 "설렘"이란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첫......"이란 접두어는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익숙함과는 거리가 먼 "혼란스러움"의 이미지가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접두어에 "눈"이란 단어가 붙으면 이내 불안, 공포, 혼돈 등과 같은 무겁고 어두움보다는 희망, 환희, 웃음 등과 같은 밝고 따스함의 물결이 일어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눈이 나타내는 "하양"의 색감 자체가 밝고 부드러움의 이미지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순백색의 눈은 세상을 하얗게 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밝고 따스하게 해 준다. 거기다, 또 다른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첫눈"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의 물리적인 흐름을 인지하게 하는 건 물론이고 나에게 무언가 좋은(기쁜) 일이 있지는 않을까라 미소지으며 일말의 기대를 품게 한다. 그래서, 첫눈은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설렘의 결과가 언제나 환희와 웃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남녀간에 행해지는 사랑의 고백 또는 사랑의 행위일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줄 안다. 두 사람의 설렘이 서로 공명(共鳴)을 이루어야 환희의 전율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덕선처럼 마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실연(失戀)의 고통스런 슬픔이 당사자의 마음을 무너뜨릴 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란 관점에서 볼 때, 첫눈은 언제나 사람들로 하여금 설렘의 기로에 서게 한다. 그 설렘을 마다하지 않을 이는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그것의 결과 또한 어떤 식으로든 감내해 내어야 한다. 첫눈이란 어쩌면 종착역을 알 수 없는 "one-way ticket"인지도 모르겠다.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손에 외로운 동전 두개 뿐

--- O15B, <텅 빈 거리에서>(1990) 중에서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첫눈이 내리기를 고대한다". 그 설렘이 언제나 환희어린 미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지라도, 그리고 실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지라도 개의치 않다는 듯이 사람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첫눈으로 이 세상이 하얗게 물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첫눈을 기다린다. 설렘의 미소로 내 마음이 따스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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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팔 제6화의 소제목인 "첫눈이 온다구요"는 1986년 제10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한 이정석이 부른 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곡은 여섯번째 에피소드의 맨 마지막 부분의 배경음악으로도 쓰이고 있다. 당시 피어선 신학대학교 2학년생이던 이정석은 이 곡을 불러 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듬해 이 곡은 대상을 수상한 유열이 부른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와 더불어 크게 히트했다.

<첫눈이 온다구요>를 부른 이정석

아래는 이정석의 곡 <첫눈이 온다구요>이다.

<> 응팔 제6화를 보면 정환이 집앞에서 덕선이 <별이 빛나는 밤에>에 보냈다가 반송된 엽서를 읽는 장면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데, 4인조 팝밴드 O15B가 지난 1990년에 발표한 그들의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인 <텅 빈 거리에서>이다. --- 4인의 멤버 중 조현찬은 곧 밴드를 탈퇴했고 이후 이들은 3인조 밴드로 활동했다. --- 이 밴드는 당시로선 매우 특이하게 --- 실제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메인 보컬을 정식 멤버가 아닌 객원으로만 참여시킨 건 015B가 최초이다. --- 메인 보컬을 객원으로 참여하게 했는데, 이 곡 또한 당시 신인이었던 윤종신이 객원 보컬로 부른 것이다. 윤종신의 미성을 음미할 수 있는 좋은 곡이라 생각한다.

팝밴드 015B의 데뷔 앨범 <공일오비>

다만, 지난 제4화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1988년을 그리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확실히 후대에 발표된 음악을 선곡한 점은 여전히 아쉽다. 금번 제6화에서는 이 곡뿐만 아니라, 조정현이 1989년에 발표한 자신의 데뷔 앨범의 타이틀 곡인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도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점 또한 동일한 이유로 아쉬운 일이다. 그 시대를 직접적으로 상징 또는 묘사하는 음악이 아니라 특정 장면 또는 상황의 분위기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배가시키는 단순한 배경음악으로 선곡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에서 상기한 점들을 두고 오류라 재단하는 건 지나쳐 보이지만 최대한 그 시절 즈음에 발표되었거나 그 이전에 발표된 곡을 사용하는 게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참고로, <텅 빈 거리에서>의 가사는 이 곡이 발표된 시기의 시대상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데, 가사 중 "야윈 두손에 외로운 동전 두개 뿐"에서 "동전 두개"란 가사가 사용된 이유는 1990년 당시의 공중전화 시내 통화 요금이 20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전 두개는 10원짜리 동전 두개를 의미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래는 015B가 연주하고 객원 보컬인 윤종신이 부른 <텅 빈 거리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