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자들은 참을성이 거의 없습니다. 사이코패스라는 말과 합성해서 사이다패스 라는 비꼼이 등장할 정도로 전개가 답답한 것을 극도로 싫어 합니다.
야동 관람할 때랑 똑같죠. 짐승이 아니고서야 남녀가 사랑에 빠져서 떡을 치려면 교감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한데 얼마나 되는 남자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겠습니까? 빨리 감기해서 떡치는 씬만 보고 싶어 하죠.
작가는 이러한 독자들의 니즈에 맞춰서 소설을 써야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독자들은 개연성이 없는 날림 소설을 싫어합니다. 물론 상관 안하고 말초적인 자극만 즐기는 독자들도 많지만...어쨌든 보편적으로 최소한의 개연성은 지켜야 합니다.
이 때 '회귀'라는 아이템은 개연성과 전개 속도 둘 모두를 구비해줄 수 있습니다. 가령 회귀 라는 전가의 보도가 발굴되기 전에 장르 소설을을 보십쇼. 그냥 절벽에서 떨어지면 우연히 천년설삼이 있고 코를 박으면 그 곳이 우연히 여자 성감대일 수 밖에 없었죠. 독자가 원하는 건 대리만족이니까 일단 대충 납득해주긴 했는데 독자들도 뇌가 있지 계속 보다보면 그런 기연 난무에 얼척이 없고 작품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회귀는 여기에 개연성을 빠르게 구비해줍니다. 우연히 절벽에서 떨어져서 천년설삼을 먹는게 아니라, 회귀를 했기 때문에 천년설삼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이래버리면 천년설삼 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느라 고구마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얼척없는 기연이라고 개연성에 대해 욕 먹는 것도 덜 처먹습니다
게임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벨 업' 그러니까 주인공이 강해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려면 많은 분량이 소요됩니다. 용노사의 태극문을 떠올려보세요. 주인공이 수련하는 장면만 한 권 그냥 잡아 먹습니다. 그런데 게임시스템을 도입하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 [히든 스킬! 태극권 심화 습득!] [레벨 업! 태극권 레벨 9999+ 되었습니다] 두 줄만 쓰면 됩니다
게임 시스템이 회귀랑 조금 용도가 다른 점은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쓰인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판타지 소설의 경우 과거 고전작들을 보면 마법 체계를 설명할 때 마법의 신 아르카토르가 어쩌구저쩌구 마나의 흐름이 어쩌구 저쩌구 하고 구구 절절히 창세 신화까지 가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게임 시스템이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 [신이 그렇게 만듬. 레벨업 하셈] 끝
독자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말초적인 자극을 빨리 얻어서 좋고 작가들은 세계관이나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개날림으로 쓸 수 있어서 좋고... 아무도 이 전가의 보도들을 포기하지 않겠죠...단물 다 빼서 나오고 나오다가 이제 진짜 질려서 사이다패스들마저 시장을 떠날때까지요.
야설에 대입해보면 이 두 가지 아이템의 위력이 굉장히 와닿습니다.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동네 이쁜 미시 아줌마랑 떡을 친다고 쳐요. 과거에는 어땠나요? 미시 아줌마가 발정이 나서 혼자 위로하고 있는 장면을 '우연히' 본다든지, 미시 아줌마랑 우연히 부딪혀서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 주인공의 대물을 느낀 아줌마가 그 다음날부터 주인공을 보는 눈빛이 변한다든지 구질구질한 전개가 이어져야 해요.
이 과정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럴 능력이 없는 많은 야설 작가들이 그냥 아줌마가 발정이 나서 바로 눈이 뒤집어졌다든지 주인공이 [아주머니 사랑해요 우리 섹스합시다!] [어머나! 그러자꾸나!] 이런 수준의 대화를 하면서 떡치는 장면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 회귀 를 넣으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 회귀해서 이미 아줌마의 성감대나 취향이나 속마음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식으로 전개하면 아무 무리가 없으니깐요. 게임 시스템은 더하죠. [뾰로롱! 왕거근님의 색기가 상승했습니다! 매혹 스킬의 습득이 가능해집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뾰로롱. 그리고 떡떡떡
이렇게 개연성 확보를 쉽게 해주는 아이템 중에 야설 전용 아이템도 있죠. 최면술이나 최음제 같은 거요..
제가 보기에 회귀와 게임 시스템은 장르 소설계의 레쉬가드 같은 존재입니다. 레쉬가드는 여자들의 이중적인 니즈를 모두 해결해줘요. 예쁜 몸매가 드러나는 예쁜 수영복을 입고 싶은 욕구와, 부담스럽게 생살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욕구 둘 모두를 만족 시켜주지요.
회귀와 게임 시스템은 빨리 빨리 대리만족과 말초적인 자극을 얻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밑도 끝도 없이 주인공이 커가는 개날림 소설을 보기 싫어하는 독자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줍니다.
작년과 달리 올 여름은 레쉬가드가 살짝 시들해진 것처럼 소설 트렌드도 언젠가 어찌될 지 모르겠지만요
(자유)
혹시 신도림쪽에서 1호선 인천방향 퇴근하시는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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